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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익종의 이 노래 : ‘사랑의 눈동자’>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2. 4. 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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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가 Guitar라는 외국어라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타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통기타를 연상합니다. 한국인만 애용하는 통기타라는 말은 이라는 한국말과 기타라는 외국어가 합성된 새로운 유형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통기타를 활용한 포크음악은 외국에서는 없는 새로운 유형의 장르로 고착이 되었습니다. 이를 반영하여 다음의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는 한국의 통기타를 ‘T'ong guitar (or tong guitar)’로 소개하면서 통기타는 단순히 악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통기타로 상징이 되는 1970년대 포크송이라는 음악장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자는 고사(橘化爲枳)라는 고사가 떠오릅니다.

     

    T'ong guitar (or tong guitar) was a form of Korean music developed in the early 1970s. It was heavily influenced by American pop music, and artists in the genre were considered Korean versions of American folk singers, such as Joan Baez and Bob Dylan. The musical form originally started as a solo singer-songwriter performing with an acoustic guitar. It was allied with student movements of the 1970s in song clubs such as "Maeari"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in Norae Undong ("Song Movement"), caused the embracing of popular genres by Korean intellectuals. Serious academic inquiries in Korean popular music started in 1984, and continue today.However, in the 1980s, t'ong became a form of soft rock ballad that earned critical scorn, being described as a 'mindless love affair with American culture'. Norae Undong separated from t'ong guitar, becoming a more rock-based genre.

     

    이렇게 한국식 음악장르로 대유행을 떨쳤던 통기타음악도 1970년을 지나 1980년대에는 차츰 그 열기가 식어갑니다. 그 이유는 금새 싫증을 내는 한국인의 특성도 한몫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기타 자체의 한계에 기인합니다. 통기타는 연주가 아닌 반주만으로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드럼처럼 아예 박자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어깨에 통기타를 메고 노래반주를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반주에 그치고, 신디사이저 등 건반악기가 창출하는 연주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말하자면, 야외에서 포크송을 부르거나 캠프화이어를 하는 청춘들의 추억 만들기에 통기타는 아련한 추억의 보조장치로 훌륭한 기능을 가질 수는 있으나,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을 위하여는 많이 부족한 악기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1980년 이후 음악과 악기에 대한 대중들의 시각이 변한 탓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이후 컴퓨터가 보급이 되면서 왜 노래 한곡을 위하여 팔이 빠져라 스트로크를 반복해야 하고, 손끝의 살이 터지고 굳을 정도로 연습을 반복해야 하는 통기타에 목을 메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통기타에 가해지면서 차츰 통기타의 특유의 낭만이 사라졌습니다. 그건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미 헨드릭스부터 잉베이 말름스틴, 에릭 클랩튼 등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에 쏟아졌던 대중의 열기도 차츰 시큰둥해졌습니다. 기타를 통하여 현란한 손동작으로 창출하는 음악도 음악이고 컴퓨터에 악보를 입력하면 저절로 작동하는 음악도 음악이라는 시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튼 1980년대는 동서를 막론하고 전자기타나 통기타나 과거와 같은 위력은 사라졌습니다.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BTS‘FAKE LOVE'가 현란한 기타연주가 있어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닙니다. 둘 다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일반화된 컴퓨터 연주 음악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가 트레이드마트인 한국에서는 유행이 급격하게 변합니다. 1980년대 이전에 맹위를 떨쳤던 그룹사운드라 불리는 록그룹가수들과 통기타가수들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빛의 속도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추억을 먹고 사는 영물입니다. 1990년대 이후 아이돌이 가요시장을 석권하자 급격하게 소외된 아재와 아짐세대들은 1980년대 이전 통기타로 상징이 되는 포크음악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소환하는 1980년대 마지막 통기타 가수는 단연 이주호와 유익종이 멤버로 결성한 해바라기입니다. 해바라기는 악단의 연주가 있거나 없거나 무관하게 언제나 통기타를 두르고 불렀던 마지막 통기타가수입니다. 그들에게 통기타란 가수로서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통기타란 그들에게는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입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사랑의 눈동자도 해바라기가 자주 부른 노래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랑의 눈동자는 해바라기를 결성하기 이전에 유익종이 단독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통기타음악은 통기타와 조화되는 화음이 중요합니다. 이주호와 더불어 부르는 유익종은 매력적인 하모니를 창출하는 귀재입니다. 유익종은 이주호에 가려서 덜 알려졌지만, 통기타와 어울리는 목소리로는 손에 꼽을 만한 가수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춘근과 만든 어서 말을 해는 대중적으로도 뜨거운 인기를 누렸습니다. ‘사랑의 눈동자자체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노래지만, 이 노래는 1980년대 해바라기의 전성기에도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통기타가수의 마지막 전성기를 누린 해바라기의 마지막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irDszG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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