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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주 이야기
    7080 이야기거리 2020. 11. 2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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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는 그리움이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부딪히는 잔속에 담긴 맑은 소주에는 옛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다. 소주가 맑은 것은 옛 추억의 색깔을 고이 입혀보라는 즐거운 의도이다. 때로는 빨갛고, 때로는 하얀 친구들의 우정을 고이고이 담기 위해서는 소주가 색깔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을 담아내려고 맑은 빛으로 소주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어색한 세월의 간극을 메워주기 위해서라도 소주는 맑아야 한다. 우정이 혼탁하면 이미 우정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맑은 소주를 담고 있다. 자신의 추억은 스스로에게는 더할 나위 투명하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추억이라도 자기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깨끗하고 맑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투영하는 소주는 자아성찰이 되며, 동시에 인생의 관조가 된다.

     

    소주는 너와 나만의 언어이다.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는 마음속의 소주는 친구와 잔을 부딪히면서 나도 모르게 깊고 깊었던 내 안에서 뛰어나와 친구 마음속의 잔을 넘치도록 채운다. 따르는 잔속에는 희미했던 옛사랑의 추억도 슬며시 담긴다. 시간과 공간을 넘는 요술을 가지고 있는 소주는 오래된 과거를 회상하다가도 교착상태의 현재 진행형 난제를 풀어나간다. 

     

    소주는 눈물이다. 소주에는 인생의 신산이 담겨있다.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절박한 수단이다. 절벽위에서 내 한 몸을 지탱하는 한 줌의 지푸라기이다. 삶은 고난을 이고 지고 가는 먼 여로이다. 그러나 그 여로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누구나 그 함정에 빠지는 유혹을 느낀다. 소주는 때로는 그 유혹의 동반자이며, 악마의 술수를 부리기도 한다. 급기야 저승의 동반자가 된다. 자살한 사람의 곁에는 언제나 소주가 동반을 한다. 그 소주에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죽음보다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상실을 담은 눈물이 담겨있다. 

     

    소주는 생로병사라는 인생법칙을 간직하고 있다. 소주는 극복할 수 없는 원초적 불능을 이겨보려는 비열한 타협을 담고 있다. 경쟁과 생존의 법칙, 그리고 도태와 절망은 사람에게 필연이다. 도전은 성공을 낳지만은 않는다. 좌절과 패배를 낳기도 한다. 소주가 맑은 것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인생을 알게 해주기 위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소주는 희망이다. 소주라는 단어에는 휴식이라는 언어가 내재되어 있다. 고단한 일상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단순한 안락과 정체가 아니다. 내일을 위한 적극적인 도전이요, 반성을 통한 철저한 준비이기도 하다. 때로는 망각이 인생의 윤활유가 된다. 소주는 망각을 위한 즐거운 촉매이기도 하다. 

     

    나는 소주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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