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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치기왕 김일>
    7080 인물 2020. 11. 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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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의 히트곡 ‘울트라맨이야’의 가사를 유심히 보면, 이 노래의 어렸을 적 화자가 그리는 영웅이 울트라맨임을 주장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특히 남자의 경우에, 그 형태가 울트라맨과 같은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 같은 가공의 인물이든, 이순신장군같은 실존의 인물이든 어떤 영웅을 마음속의 상(像)으로 새기고, 그 영웅과 닮고 싶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동화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순신장군이나 강감찬장군이 되어 적을 단박에 무찌르는 상상도 했다가, 때로는 마징가 제트를 조종하는 쇠돌이가 되어 로켓 주먹을 날려 아수라백작과 헬박사를 혼내주는 상상도 했습니다. 

     

    우리의 어릴 적의 영웅은 ‘박치기 왕’ 김일이었습니다. 실은 김일은, 요즘의 김연아처럼, 온 국민의 영웅이었습니다. 김일이 등장하는 프로레슬링이 중계를 할 때면 온 동네가 술렁거렸습니다. 언제나 대낮부터 술에 취했던 주정뱅이 아저씨도 맨 정신으로 텔레비전을 보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김일 프로레슬링의 중계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우리나라와 우리국민은 너무나 가난했기에, 지금처럼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부잣집이라는 소리도 듣곤 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 C.M.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김일이 박치기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는 옛날 모습을 그리는 것을 보았는데, 실제로도 그랬기에 옛날의 향수가 물씬 배어나왔습니다. 

     

    김일은 혈혈단신으로 무림의 허다한 고수들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불멸의 필살기 ‘박치기’로 제압을 했습니다. 자이언트 바바의 무시무시한 16문킥에 얼굴에 선혈이 낭자했어도 김일은 굴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엄청난 거구의 자이언트 바바의 16문킥에 김일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 때, 우리는 비명을 질렀고, 슬퍼서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 거구의 자이언트 바바가 고목처럼 김일의 박치기에 쓰러질 때, 우리는 환호를 했습니다. ‘반칙의 황제’ 안토니오 이노키가 시도 때도 없이 치사한 반칙을 날릴 때도, 우리는 김일이 박치기로 이노키를 혼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어김없이 김일은 우리의 믿음에 보답을 했습니다. 김일이 국민의 영웅인 것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우리와 슬픔과 기쁨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칼라텔레비전이 등장할 무렵, 김일은 우리의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프로레슬링이 전부 진짜는 아니더라도 전부 ‘쇼’는 아님에도,  일부 인사의 ‘쇼’라는 발언의 충격과 후진양성의 소홀, 마침 등장한 프로야구, 축구의 등장 등 여러요인이 겹쳐 허무하게도 국민스포츠의 인기는 스르르 사라져갔고, 등에 담뱃대와 갓을 새긴 하얀 가운을 입었던 우리의 영웅 김일은 브라운관에서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김일은 2006. 10. 26.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가 이 세상을 뜬 것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그는 죽지도 않았습니다. 까만 밤하늘을 뚫고 힘차게 솟구쳐 올라가는 빨간 불꽃처럼 우리의 기억속에 선명하게 박치기를 하는 김일이 남아있는 한, 그는 절대로,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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