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연기력이 빛나는 배우 김영철>

흔히들 배우들을 일컬어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배우들은 전성기라는 정년이 있습니다. 배우는 화면에 구현된 이미지를 파는 사람들입니다. 형상화된 이미지가 더 이상 대중에게 소구력이 없을 경우에 그 배우는 사실상 수명이 다한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똑순이’ 김민희는 청소년기까지 배우로서의 소구력이 있었고, 성인이 돼서는 배우라 불리기 민망할 정도로 출연작이 없었습니다. ‘미달이’ 김성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틴 스타 강주희도 성인배우로서의 안착이 실패했습니다. 어린이의 우상이었던 데일리 공주 천은경은 마땅한 후속 배역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 에로영화에 출연했다가 그냥 배우인생을 마감했습니다. 크리스마스때마다 안방을 호령했던 ‘나홀로 집에’의 맥컬리 컬킨은 역변한 성인의 얼굴로 인하여 배우인생을 사실상 마감했습니다. ‘터미네이터2’의 에드워드 펄롱은 성인이 되면서 아역시절에 얻었던 배우로서의 상품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실은 굳이 장황한 실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배우는 생로병사라는 필연법칙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장하다가 늙어가면서 배우로서의 상품가치가 변하기 마련이기에, 배역이 변하거나 아예 배역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화면에 구현된 이미지가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배역으로 최적화되어야 비로소 배우는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역배우에서 청춘스타, 그리고 중년배우로 이어지면서 배우인생을 만끽하는 배우들은 진정한 프로이자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렇게 배우인생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덕이 심해지는 대중의 식상감으로 잊혀지는 배우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청춘스타로 극강의 인기를 누리다가 사극의 페르소나로 군림했던 최수종도 늙어가면서 이제는 출연작 자체가 뜸해졌습니다. 동안의 수려한 마스크로 배우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했던 최수종의 이미지는 이제 60줄이 되면서 마땅한 배역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라 배우가 구현하는 이미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아역배우는 아역에서 최적화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지만, 성장하면서도 성인배우로서의 매력을 새롭게 구축하면 모를까 대부분은 당초에 구축한 이미지가 상실되기 마련입니다. ‘똑순이’ 김민희, 그리고 ‘미달이’ 김성은이 연기력이 떨어져서 캐스팅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특유의 귀여움이 사라지는 30줄의 나이가 되자 스르르 캐스팅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철은 대단한 배우입니다. 늙어가면서도 중후한 이미지가 뚝뚝 떨어지는 꽃중년의 세련된 이미지, 그리고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중저음의 음성으로 구축하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특유의 이미지가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인상이 강렬하면서도 싸구려같은 이미지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기에, 김영철은 배우로서의 상품가치가 최고입니다. 입을 꾹 닫고 눈을 지그시 뜨면 조직보스의 엄숙함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그러다가 해맑게 웃으면 마음씨 좋은 동네아재로 변신을 합니다.

 

본래 배우는 카멜레온같은 변신이 숙명이지만, 김영철은 하얀 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김영철을 김영철답게 만드는 매력만점의 목소리도 김영철의 매력으로 뺄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김영철은 멜로물에도 능했지만 농부나 머슴으로도 꽤나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대기업의 회장, 조직의 보스, 왕, 조정의 중신 등 중후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배역에 최적화되었습니다. 사극이면 사극, 현대극이면 현대극 모두 잘 어울리는 만능배우가 김영철입니다.

 

젊은 날의 주연급 배우라도 늙어가면서는 조역이나 단역을 전전하는 것이 대다수 배우들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김영철은 늙어가면서도 주연이나 주조연으로 거듭하여 캐스팅이 됩니다. 배우로서의 타고난 재능도 크겠지만, 김영철 본인의 부단한 노력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시대의 명품배우가 김영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