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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아버지상, 송재호>
    7080 배우/7080 남자배우 2023. 1. 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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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죽어서 저승까지 갖고 갈 음악이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숨도 쉬지 않고 윤용하 작곡의 보리밭이라고 답을 할 것입니다. 전쟁의 상흔 속에서, 그리고 보릿고개의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보리의 신생의 기상을 보고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영혼의 울림으로 승화한 윤용하의 대작 보리밭은 지금까지 수백, 수천 번을 들어봤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명곡 중의 명곡입니다.

     

    그 윤용하는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되었지만, 오래 전에 KBS연작 미니시리즈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에서 윤용하 역을 열연한 배우가 바로 송재호입니다. 워낙 오래된 드라마라 기억하는 분들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강렬한 연기 때문에 평생 송재호의 열혈팬이 되었습니다. 요즘 말하는 메소드연기로 진짜 윤용하가 아닐까 할 정도의 사실적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낡아빠진 미군복을 엉성하게 염색한 누더기 옷을 걸친 허름한 차림에도 예술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윤용하를 연기한 송재호는 영락없이 배우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송재호의 연기를 보고 난 이후 보리밭이라는 노래가 제게는 언제니 성가처럼 들렸습니다. 그 이후로 송재호가 출연한 드라마라면 무조건 열심히 봤습니다.

     

    모든 배우가 평생 연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연기력이 떨어지거나 배우로서의 열정이 시큰둥하면 배우의 길은 자연히 멀어집니다. 평생 배우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배우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는 말입니다. 감독이나 시청자 내지 관객은 눈매가 매서운 법입니다. 어느 배우든지 평생배우라는 말은 연기력과 열정 모두를 구비했다는 무언의 증명입니다. 특히 요즘같은 시대는 배우에 대한 연기평이 국제적으로 수억 개씩 실시간으로 등장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던 그 옛날에도 연기력이 없는 배우가 날로 먹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배우는 배역에 따리 카멜레온이 됩니다. 그러나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한 배역을 소화해내는 배우가 현실에서 존재합니다. 훌륭한 배우는 어떤 배역이든지 소화능력이 출중합니다. 송재호가 그랬습니다. 사극에서부터 현대극, 시대물까지 어떤 배역이든 척척 해냈습니다. 조정에서 불을 뿜는 충신역할도 훌륭했고, 순박한 시골농부역할도 그럴듯하게 잘했습니다. 가끔 맡는 악역도 멋지게 소화했습니다. 전술한 평생배우의 전형이 바로 송재호입니다. 송재호는 죽는 날까지 연기력에 대한 논란 자체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 연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배우 송재호의 배역 중에서 맨 처음에 언급한 윤용하 역 외에 제가 꼽은 배역은 1980년대 청춘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푸근하고 자상한 아버지 역입니다. 청춘드라마이기에 당대의 미남, 미녀들인 손창민, 최재성, 최수종, 최수지, 이상아가 주목을 받았지만, 가정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잔잔한 미소로 가족을 이끄는 송재호는 청춘스타들의 현실에서의 아버지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방송 중에서 따스하고 인자한 웃음은 실제로 송재호의 진면목이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연기력이란 튀는 배역에서만 검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주연배우들을 이끄는 안정적인 연기가 연기력입니다. 잔잔한 미소 속에서 가장의 고뇌와 어려움을 소화해냈던 송재호의 연기는 실은 그 시대 아버지상이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가정이 해체되고 젠더갈등이 극심한 상황이라 송재호가 1980년대에 그렸던 아버지상이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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