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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세의 이 노래 : ‘그녀의 웃음소리뿐’>
    7080 가수/7080 남자가수 2023. 8. 1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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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친구 여러분! 내일 다시 만나요. 안녕!

     

    위 멘트는 1980년대 초반 K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달려라 중계차MC 이문세가 느끼하게 반복했던 클로징멘트입니다. 손을 귀엽게 흔드는 것은 당연히 덤이었습니다. 그 시절은 지금과 같은 종일방송체제가 아니었습니다. 평일은 저녁 6(나중에는 5)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중파방송을 했습니다. 이상한 화면이 등장했던 화면조정시간과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나서야 비로소 본방송이 시작되었는데, 본방송의 시작은 공중파방송국 모두 어린이프로그램의 차지였습니다.

     

     

     

     

     

     

     

     

     

     

     

    <출처 : 구글검색>

     

    지금 봐도 말상(馬像)의 이문세가 귀여움과 발랄함이 넘치는 홍미리와 더블MC로 당시 KBS 어린이프로그램의 간판인 달려라 중계차를 진행했습니다. ‘달려라 중계차. 달려라 달려.’로 시작하는 시그널음악으로 시작하는 달려라 중계차는 전국의 국민학교에서(그 시절은 초등학교가 아니었습니다)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와 행사, 그리고 만화가나 연예인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선행학습과 과외수업으로 찌든 요즘과는 달리 마음껏 뛰어놀던 시절이었기에, TV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친구였기에 달려라 중계차’, 그리고 이문세는 당연히 전국 어린이의 친구였습니다.

     

    어린이프로그램과 딱 어울리는 홍미리와는 대조적인 캐릭터인 이문세는 이상하리만치 위 달려라 중계차에 녹아들었습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입담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이문세보다 홍미리에 눈독(!)을 들였던 저로서는 귀엽고 발랄한 미녀 홍미리와 진행을 했던 이문세가 뜬금없이 부러웠습니다. 후일 홍미리와 자모가 비슷한 보조개 미녀 배우 홍리나에 또 꽂혔던 저로서는 가 들어가는 여자는 일단 주목을 했습니다. 당시는 물론 지금 생각해도 엉뚱하기는 했지만, 홍미리가 주는 인상이 그만큼 산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슬프게도 레전드가 된 이문세와 달리 홍미리는 기억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이프로그램의 MC같지 않은 MC였던 이문세는 슬며서 MBC로 넘어가서 11’이라는 청년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어린이프로그램에서는 뭔가 느끼하고 어색함이 묻어났었는데, 청년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문세 특유의 입담이 살아났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문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문세는 어느 날인가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으로 시작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을 부르는 가수로 변신을 했습니다. 아마도 11’ MC의 후광으로 가수로 변신을 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제 기준으로이 노래는 뭔가 강렬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실은 그 시절은 조용필이 천하통일을 하여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이라 이문세는 그냥 다크호스 정도에 불과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문세의 음색이 뚜렷하게 배어나는 나는 행복한 사람달려라 중계차시절의 인상을 완전하게 지우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문세는 별이 빛나는 밤에MC로 또다시 변신하면서 인기로 뜬 가수는 라디오D를 하지 않는 관행을 깼습니다. ‘별밤지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이문세는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문세 트레이드마크인 입담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라디오DJ로도 정상을 군림할 시절에 바로 이 노래,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등장했습니다. 예전에 MBC라디오의 DJ PD로 명성이 높았던 김기덕이 198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치켜세웠는데, 그의 평가가 과장이 결코 아닙니다. 가사 및 곡 모두 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 중의 명곡이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이영훈은 서정성이 빼어난 가사를 노래에 입히면서도 1980년대까지 발라드면 발라드, 댄스면 댄스 모두에 배어든 뽕끼를 완전히 없앤 작곡 및 작사의 장인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대중가요는 뽕끼일색으로 국화빵의 향연이었습니다. 도무지 발전이 없었고, 대중의 다양한 요구를 외면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팝송에 탐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문세는 이영훈과 황금콤비를 이루면서 1980년대 조용필시대의 견고한 철옹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마치 무협지에서 천년성채를 단기필마로 궤멸시키는 무사와도 같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BtuIOXvww

     

    그때 그 시절은 라디오를 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들렸습니다. 온통 그녀의 웃음소리뿐이었고, 세상이 그녀의 웃음소리뿐으로 덮였습니다. 요즘 말로 귀에 피가 맺힐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웃음소리뿐뽕끼라는 오랜 가요계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변진섭과 신승훈으로 이어지는 발라드홍수의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세상을 지배할 무렵에 저는 그녀라는 단어의 조합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한글인 ()’의 조합이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어원이 무엇인가를 여기저기 알아봤습니다. 대중가요 때문에 엉뚱하게도 어원을 찾으려 허둥댄 것입니다. 나중에야 일본어의 'かのじょ(彼女; 카노조)‘에서 유래한 어색한 어원을 알았습니다. 뭔가 고유한 한국어는 아닐 것이라는 추측은 했지만, ‘그녀의 웃음소리뿐에 빠졌다가 떨떠름하게 발견한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녀의 웃음소리뿐의 위력은 어마어마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추억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대중가요의 운명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기억속에는 뚜렷한 기념비를 세웠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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