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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시절의 ‘자매들’>
    7080 가수/7080 여자가수 2023. 10. 1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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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박세리가 골프로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LPGA를 다룬 언론기사가 폭발하였습니다. 그 시기에 미국 LPGA 투어대회에서 우승한 펄 신이라는 미국교포 선수가 있었습니다. 롱런은 하지 못하고 원히트원더로 선수생활을 마감한 선수지만, 투어대회 우승으로 한국의 국위선양을 했다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펄 신이라는 자모배열이 펄 시스터즈라는 1970년대 유명 자매가수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름에 이라는 것이 들어가서였을 것입니다.

     

    펄 시스터즈의 대표곡 커피 한잔은 아직도 입가에 맴도는 노래입니다. 신중현 특유의 사이키델릭곡인데, 중독성 강한 멜로디로 당시에 엄청난 히트를 했습니다. ‘펄 시스터즈는 요즘으로 치자면 일종의 걸그룹 가수였는데, 미모에 몸매, 그리고 특유의 느끼하면서도 섹시한 음색으로 당대의 남심을 휘어잡았습니다. 그 인기를 몰아서 멤버 중의 하나가 모 재벌의 며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파경을 맞아서 성공한 인생인지 다툼이 있을 수 있지만, 가수로서는 성공한 자매가수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화끈하게 성공한 자매가수가 펄 시스터즈만 있었던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3nZ7PR2IHU

     

    희자매도 있었고, 숙자매도 있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초청공연을 야구장에서 했던 국보자매도 있었습니다. 자매가수들의 인기를 반영한 것입니다. 희자매는 사라졌지만, 그 멤버 중의 핵심이었던 인순이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롱런은 못했지만, 숙자매는 비쥬얼에서 우월했습니다. 숙자매는 그 시절의 유행(?)이었던 번안곡으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노래로 한정해서 자매가수들을 평가하자면 단연 희자매를 우선순위로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희자매의 대표곡은 실버들인데, 당시에는 김소월의 시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려한 가사가 빛이 났습니다. 물론 곡도 대단히 훌륭해서 요즘 들어도 촌스럽지 않습니다. 다만, 가사가 진짜 김소월의 시인지 아직도 규명되지 않아서 유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HqyeNrUqu0

     

    그러나 그 시절의 자매가수들의 인기절정은 누가 뭐래도 토끼소녀입니다. 당초에 이들은 바니걸스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에서 이상한 국어사랑 정책을 추진하면서 졸지에 토끼소녀로 둔갑했습니다. 당시 호적제도 하에서도 국어로 표기가 가능하다면 외래어도 얼마든지 국민의 이름으로 사용이 가능했음에도, 연예인의 이름을 한국어로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정책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황당한 정책 때문에 어니언스양파들, ‘바니걸스로 강제개명(?)이 되어서 불렸습니다. 그 이후에 양파들은 어니언스로 회귀했지만, 토끼소녀는 그냥 토끼소녀로 남았습니다.

     

    토끼소녀는 이름 그대로 토끼같이 발랄한 율동과 세련된 패션으로 무장한 미소녀 자매였습니다. 뭐든 그렇지만 여자는 예쁘면 90%는 먹고들어갑니다. 당대 자매들 중에서 월등한 미모로 인기끝판왕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각종 쇼에서 토끼소녀는 약방의 감초였습니다. 그 시절은 요즘같이 연예인의 덕목(!) 중 비주얼의 비중이 절대적인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토끼소녀같은 월등한 미모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실 토끼소녀의 히트곡은 그저그런 수준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당대 인기절정의 팝가수 ABBA‘Waterloo’를 그대로 번안하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J-h-UL25i8

     

    토끼소녀는 심지어 후속 히트곡 자체가 없었어도 꾸준히 1980년대에도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미 유부녀가 된 이후에도 소녀라고 애교가 묻은 강변을 하면서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들어서면서 트로트곡의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트로트곡 위주의 토끼소녀의 레파토리는 관심을 끌기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년의 나이에 소녀패션은 부조화를 넘어 부적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대다수 연예인이 그렇듯이 방송가를 떠나면서 토끼소녀는 빛의 속도로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걸그룹이 대세가 된 시대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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