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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희의 이 노래 : ‘연가’>
    7080 가수/7080 여자가수 2023. 12. 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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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12. 26. 헌법재판소 판결(96헌가18)은 주세법상 자도소주 우선주의내지 ‘11(소주회사)’의 규정이 위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이었습니다. 주세법상의 ‘11의 규정이란, 1970년대 초반에 막소주라 불리는 저가의 소주를 제조하는 소주회사들이 너무나도 난립하고 있기에, 정부가 주도하여 소주회사들의 통폐합정책을 추진하고 소주용주정의 배정을 정부가 통제하는 제도를 도입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법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그 판결은 참으로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암울했다던 유신헌법의 시기에도 당시를 살았던 한국인들은 소주를, 나아가 모든 술을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소주회사가 장사가 되지 않았다면 주세법을 통한 인위적인 통제정책을 쓸 리가 만무합니다. 위 헌재 판결은 은연중에 그 시절에 소주를 많이 마셨던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굳이 고 조지훈 시인을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시절은 술을 많이 마시면 장군또는 주당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듣던 시기였습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면 대폿집에서 막소주를 마시는 것이 당시의 풍경이었습니다. 지금도 유튜브의 기록영상에는 그런 풍경이 남아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막걸리를 즐겨 마신 것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술에 관대한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술에 노래가 빠지면 정말로 허전합니다. 직장인들은 대폿집의 둥근 콘크리트테이블에 젓가락을 두들겨가면서 뽕짝으로 불리는 트로트곡들로 흥을 돋궜습니다. 이렇게 당시 기성세대들이 소주와 막걸리를 사랑하고 트로트곡들을 불러댔다면,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은 생맥주와 통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포크송들이 천생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맥주와 청바지, 그리고 통기타는 어쩌면 그 시대 청년들의 상징이자 특권과도 같았습니다. 특히 대학생이 귀하던 시절이기에, ‘학사가수라 불리던 대학물을 먹은 통기타 가수들은 먹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반가요들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 통기타가수들이 부르던 포크송들도 작곡가나 원곡가수 등 저작권자 자체는 대부분 존재했던 노래였습니다. 노래라는 것이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작사, 작곡자는 물론 원곡가수 등 저작권자가 존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포크송 또는 포크송계열의 노래들은 저작권자가 뚜렷하게 부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포크송계열의 노래들은 저작권의 확보가 어려웠고 이를 통한 상업성의 추구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유달리 번안곡이 많았고, 야외에서, 그리고 해변에서 통기타와 함께 떼창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포크송계열의 노래들은 꾸준히 불리는 스테디셀러형의 노래들이기도 했지만, 번안곡이 많아서 부른 가수들도 많아서 굳이 저작권에 목을 메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절 전체가 저작권의 무풍지대였지만, 특히나 통기타가수가 부르는 포크송은 저작권에 취약했습니다. 은희가 부른 바로 이 연가가 그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연가는 통기타가수들치고 부르지 않은 가수가 없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해변에서, 하이킹에서, 그리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어마어마하게 불렸던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연가캠핑송의 대명사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나 엄청나게 불렸던 노래였건만, 그 누구도 저작권자에 대하여 알고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그런 경우가 포크송의 운명(?)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rj7X4G-hhQ

     

    연가는 가수들은 물론 만인이 부르는 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가를 부르는 가수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어도 은희가 부르는 은희버전의 연가가 가장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처럼 맑고 청아한 은희버전의 연가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시리고 찌리리하고 사랑의 감정이 전해지는 착각을 느꼈습니다. 은희버전의 연가는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국민애송곡이자 통기타가수들의 애송곡이었던 연가였건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기타가수들의 쇠퇴가 뚜렷해지면서, 캠핑송의 대명사였던 과거의 영광도 사라졌습니다. 실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은희라는 가수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졌습니다.

     

    그렇게 연가가 잊혀지나 했는데, 2010년 어느 커뮤니티에서 연가는 국산가요가 아니라 포카레카레아나(Pokarekae ana)’라는 뉴질랜드 민요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려 40년이 넘어서 원곡의 존재를 안 것입니다. 그렇게나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곡이 한국인이 만든 노래가 아니라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2023년의 나무위키에서는 이를 다시금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민요이다. 원래 마오리족의 사랑 노래였는데 1914년 투모운(P.H. Tomoan)에 의해 편곡되었고 6.25 전쟁에 참전한 뉴질랜드군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되어 인기를 얻어 국내에서 연가로 번안되어 불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무위키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fjTGRb_3EZc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를 살았던 시민들의 가슴에는 통기타 반주와 함께 불렸던 연가에는 소중한 추억과 감성을 그대로 간직되어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연가라는 노래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과 회한이 녹아있습니다. 특히 연가의 감성을 극대화시켰던 은희버전의 연가는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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