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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까프에서 왕질악까지 : 성우 김기현>
    7080 배우/7080 남자배우 2024. 1. 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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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중국의 GDP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것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전 세계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기세가 무서웠기에, 그리고 엄청난 인구수를 고려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반대의 목소리의 근거는 혁신입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산업의 표준은 미국이 만드는데, 공산당 독재가 베이스인 중국은 혁신을 통한 산업의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 핵심논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논거는 갈수록 현실화되었습니다. 하다못해 스포츠브랜드에서의 혁신도 언제나 미국이 주도했습니다.

     

    우리가 일상복에도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전문스포츠브랜드가 만든 의류를 입는 것은 1970년대까지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영역이었습니다. 스포츠브랜드는 오로지 스포츠선수들만 입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그때까지 대세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아식스 미국 판매대리점에 불과했던 나이키는 일상스포츠라는 혁신을 내세워 일상복에도 스포츠 브랜드를 입자는 구호를 내세웠고, 이것이 기반이 되어 나이키는 전 세계 스포츠브랜드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한국에 도입된 화승 나이키는 삽시간에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국제상사 프로스펙스가 국산브랜드라는 애국심마케팅을 했지만, 아무래도 열세였습니다. 어디를 가도 나이키의 스우시간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나이키 대세의 초석은 실은 한국의 화승이라는 OEM브랜드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 화승 나이키가 시민들의 입에 착 감길 정도로 나이키를 만드는 회사는 화승이라고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제부터 나이키는 나이키가 만든다.’라는 멘트가 TV광고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화승이라는 문구가 사라졌습니다. 그 시절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분들을 알겠지만, 당시 나이키는 화승에 OEM방식으로 신발의 제조를 맡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화승은 월드컵 등의 신발을 자사 브랜드로 만들면서 동시에 나이키의 신발을 OEM으로 만드는 처지였기에 나이키에 대하여 일반적인 을의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나이키 본사에 대하여 고분고분한 일반적인 을은 아니었기에, 둘의 결별은 필연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나이키가 화승을 버렸다.’, ‘나이키가 한국을 버렸다.’는 정도의 반응이 대세였습니다. 그래서 나이키가 버린 것으로 인식되던 르까프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이심전심 만들어졌습니다. 요즘 말로 국뽕에 힘을 받아서 르까프는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르까프의 광고도 대박이 났습니다. 르까프를 밀어주자는 분위기에 더하여 광고도 대박이 난 것입니다. 바로 그 광고의 나레이션을 성우 김기현이 했습니다. 요즘은 물론 당시에도 디자인부터 마케팅까지 내수브랜드르까프는 세계브랜드나이키에 비길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키가 한국의 화승을 버렸기에 한국인인 우리가 한국의 화승을 밀어준다는 응원분위기가 르까프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덩달아 성우 김기현을 성공가도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QR7JGvEzNo

     

    김기현은 각종 토크쇼에서 르까프 나레이션과 자신의 성우인생을 설명하곤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품이 대박이 나지 않으면 광고가 대박이 나더라도 스르르 묻히기 마련입니다. 김기현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지만, 시각을 확장해 보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아무튼 국뽕분위기에 힘을 받았든 어쨌든 김기현은 그 이후로 승승장구를 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은하철도999’의 차장 등 각종 만화영화에서 악당역할로 꾸준히 나왔지만, 아무래도 큰 빛은 보지 못했는지 르까프 나레이션을 하기 전에 성우라는 직업을 포기하려고 했다는 고백을 보면, 조연이나 단역배우들의 열악한 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었나 봅니다.

     

    아무튼 김기현은 각종 광고의 나레이션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리고 만화영화 머털도사의 왕질악 도사 등의 악역도 꾸준히 했습니다. 조연이나 단역배우로도 꾸준히 캐스팅되었습니다.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역할로 대중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인생살이에는 운이 따르기도 합니다. 애국심마케팅에 도움을 받긴 했지만, 김기현 성우는 르까프 광고 나레이션으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조명남 등 특정 성우가 광고 나레이션을 거의 독식한 것이 사실입니다. 새로운 나레이션 담당 성우를 요구하는 대중의 수요, 애국심마케팅에 힘입은 제품 자체의 대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김기현이라는 무명 성우는 인생의 전기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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