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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 원년프로야구 대전구장 개막전 회고>
    7080 이야기거리 2020. 12. 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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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욥기의 말은 성경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국민스포츠 프로야구의 출범도 딱 그랬다. 서울공화국 한국에서는 언제나 서울중심이기 마련이지만, 프로야구는 서울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대전에서도 프로야구가 열렸다. 그런데 대전구장의 보수문제로 초여름인 1982년 6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열렸다.

     

    그 날의 추억은 아직도 새롭다. 이제는 사라진 삼미슈퍼스타즈와 OB베어스가 시합을 치렀다. 왕년의 홈런왕 김우열이 홈런을 치는 등 OB베어스는 넉넉하게 이겼다. 그 해에 삼미슈퍼스타즈는 단 한번도 OB베어스를 이기지 못했다. 그냥 동네북이 삼미슈퍼스타즈였다. TV에서만 보던 윤동균, 양세종, 구천서, 신경식 등을 보았다. 신경식이 경기가 끝나고 진상을 피우는 바람에 아직도 신경식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지만, 먼저 팬들이 도발을 했기에 진상을 피운 것이라 선해를 하면서 오래 전에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년 프로야구에 대하여는 아직도 할 말이 있다. 당시 프로야구는 아마티를 벗지 못한 것이었기에, 투수들의 투구도 요즘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그냥 140km면 강속구 투수로 불렸다. 타자들도 요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왜소했다. 그리고 홈런의 비거리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초창기 프로야구는 실업야구 수준이라 보면 되었다. 그러다가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었다.

     

    뭐든 그렇지만 프로야구의 발전도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사랑 속에서 크고 있는 것은 같다. 국민의 사랑이 없다면, 프로야구 선수는 그냥 공놀이 잘하는 덩지가 큰 젊은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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